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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림으로 보는 프랑스 민주주의 - 생활속민주주의 기자단(4기) 김채현

관리자 2021.08.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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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보는 프랑스 민주주의


- 생활속민주주의 기자단(4기) 김채현



  인류사에서 프랑스혁명이 지닌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무수한 어느 시민혁명보다도 프랑스혁명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유는 프랑스혁명이 ‘자유’,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일깨워 주었고, 오늘날의 근대 민주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제3신분의 참여를 통해 기존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을 타파하고 소수 귀족이나 성직자, 절대군주에 의한 결정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게 된 배경은 절대주의적 권력을 행사하는 왕정과 소수의 성직자 그리고 귀족이 거대한 특권을 매개로 결탁한 체제 때문이었다. 절대왕정은 한 때 유럽에서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를 최강자의 위치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전쟁의 수행과 궁중 사치 그리고 특권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민생고와 재정 위기, 사회 불평등 심화라는 현상을 점차 고착화시켰다. 루이 14세 이래 각종 전쟁의 수행으로 깊어지기 시작한 재정난을 타개하고 새로운 조세 수입원을 찾기 위해, 1789년 5월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한다. 기득권의 거대한 특권과 달리 평민에게만 세금부담이 가해지고 평민 중에서도 빈곤한 농민에게만 물렸는데, 결국 평민 계급은 기득권의 횡포와 그간의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제3신분 대표들은 스스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 의회’를 결성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반역이라 여긴 국왕은 ‘제3신분 회의장’을 폐쇄한다. 제3신분 대표들은 회의장 폐쇄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 궁전 근처 실내 테니스 코트로 장소를 옮겨 “프랑스를 위한 헌법을 제정하기 전에는 절대로 해산하지 않겠다.”라는 서약과 더불어 자신들의 동의 없이 어떠한 세금도 징수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제3신분 대표들의 선언은 궁전을 자극했다. 그들의 선언에 분노한 루이 16세는 군대를 동원하여 테니스 코트에 집결한 국민 의회를 탄압하려 했고, 탄압에 맞서 시민들은 무기를 위해 바스티유 감옥으로 향한다. 군중들의 습격은 격렬한 총격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바스티유 함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이후 하늘로부터 부여된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던 시민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1789년 8월 26일, 마침내 혁명의 결과물인 '프랑스 인권 선언'을 채택하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은 ‘인권선언’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재산권을 신성한 권리로 선포했을 뿐 아니라 신체, 의견, 양심,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인민주권의 원칙(선언 제3조), 모든 공직의 선거(선언 제6조), 권력분립에 입각한 대의제(선언 제16조)와 같은 폭넓은 정치적 권리를 천명하였다. 아울러 프랑스혁명은 평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권선언은 제 1조에서“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그렇게 존속한다.”라고 천명하였다. 인간의 자유는 개인적 자유와 함께 평등에 의해서 보완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같이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인민주권에 입각한 근대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정치적으로 발전시켜 나갔고 유럽 전역에 그 이상을 전파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근대 민주주의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